융을 말하다 (Speaking of Jung)
에피소드 42: 융의 영혼의 지도 (Episode 42: Jung's Map of the Soul, 2019, 3, 25)
《융의 영혼의 지도》 저자 스타인 박사 인터뷰, 한국어 번역
번역 : 문예출판사
번역에 대하여
이 번역은 팟캐스트 ‘융을 말하다(Speaking of Jung)’를 운영하는 로라 런던(Laura London)과 《융의 영혼의 지도》 저자 스타인 박사(Stein, Ph.D)의 배려가 없었다면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여 준 로라 런던과 스타인 박사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이 번역을 읽는 한국 독자분들 또한 함께 감사를 표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예출판사는 한국의 BTS 팬과 융 심리학 전공자를 위하여 번역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번역은 로라 런던의 홈페이지에서 자유롭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배포 및 판매는 불가하며, 이 번역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도 불가합니다.
번역을 허락해 준 로라 런던과 스타인 박사에게 다시 감사를 전합니다.
인터뷰 내용
로라 런던 : 스카이프이라는 마법 덕에 오늘 스타인 박사님과 저는 여기에서 박사님의 저서 《융의 영혼 의 지도》에 대해 얘기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음악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책과 비슷한 제목, 그러니까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라는 제목으로 4월 12일 CD 발매를 앞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 CD는 선주문이 가능하며 이미 CD&레코드 부문 1위에 올랐습니다. 박사님의 저서 《융의 영혼의 지도》는 사실 1998년에 출간되었지만, 현재 융 심리학 부문 1위에 올랐죠. 책은 9장으로 구성되었고, 192페이지로 읽기에 아주 적당한 분량입니다. ‘융 사상을 가장 잘 정리한 책’으로 소개되기도 했고요. 여러 쇄를 찍었다고 알고 있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5쇄이며 아마 2003년에 출간되었을 겁니다. 지금은 몇 쇄까지 나왔는지 궁금하군요. 오늘 우리는 박사님이 책 5장에서 ‘타자와의 드러내고 감추는 관계’라는 제목으로 다룬 페르소나에 대해 집중적으로 얘기 나눠보려 합니다. ‘페르소나’, ‘페르소나의 두 원천’, ‘페르소나 발달’, ‘페르소나 변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통합’이 소제목으로 나와 있습니다. 자, ‘융의 영혼의 지도’에서 이 지도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스타인 박사 : 지도란 뭘까요? 어떤 의미에서 내 책은 영혼(soul), 정신(psyche), 혹은 자기(self)에 대한 융의 글을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지도는 땅(territory)이 아니죠. 지도와 그 지도가 그리고 있는 땅은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내가 융의 견해와 심리학 이론을 소개하는데 ‘지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 것은, 융이 스스로를 종종 탐험가 혹은 개척자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융은 정신분석 발달 초창기에 그야말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그 이전까지만 해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 마음(mind)을 심리적 방식으로 그리고 현대적 방식으로 탐구하고 설명한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융은 말하자면, 그가 발견하고 탐험한 땅의 지도 제작자였다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인간의 마음, 자기(self)에 대한 그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지도’라는 개념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마음과 자기를 명확히 구분하고 싶진 않은데요, 융에게 그것은 모두 하나였기 때문이죠. 마음, 몸, 자기는 모두 하나의 실체입니다. 모두 하나의 일원화된 실체에 속하죠. 그리고 자기의 여러 측면은 이제부터 이야기할 페르소나, 자아(ego), 그림자 등과 같은 용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로라 런던 : 좋습니다. 그럼 먼저 ‘페르소나’를 정의해보죠.
스타인 박사 : 융은 ‘페르소나’라는 용어를, 우리 모두에게 아주 친숙한 인간 기능(human functioning)이라는 면에 관해 이야기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페르소나란 다름 아닌 모방, 그러니까 우리가 보고 접하는 것을 흉내 내고 궁리해보는 능력에 기초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라는 용어는 라틴어에서 기원했으며, 극장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뜻하므로 이 단어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파티에 참석하거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을 때 우리 각자는 연극을 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역할을 하는 거죠.
셰익스피어가 오래전 말했듯,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연극에서 연기를 하는 배우입니다. 그러므로 페르소나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우리 나름의 방식입니다. 친밀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연인, 친구, 파트너, 남편, 아내, 아버지라는 역할을 연기합니다. 이것들 모두 정해진 사회적 역할들이며, 사람들은 자라면서 그 역할을 배우죠. 역할들을 관찰하고, 궁리해보고, 흉내 내면서 배우는 겁니다. 우리 뇌 속에는 거울신경세포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바깥세상을 따라해 보고(mirror), 익히고, 주위에서 관찰한 형태와 양식을 사용해 사회라는 세상에서 기능합니다. 페르소나는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이나 몸의 피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는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을 둘러싼 세상에 사는 타인들과의 접점 같은 겁니다.
로라 런던 : 그렇다면 우리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나요?
스타인 박사 : 한 번 생각해봅시다. 우리 아들이 친구와 얘기하고, 그런 다음 자기 선생님과 얘기하고, 그런 다음 내게 얘기한다면, 그 아이는 각기 다른 세 사람이 아니지만 각기 다른 세 개의 페르소나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페르소나에서 그 아이는 친구 혹은 연인이고, 또 다른 페르소나에서는 학생이며 어쩌면 선생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선생님 역할을 얼마든지 흉내 낼 만큼 나이를 먹었거든요. 그러니까, 그래요, 우리는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상황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지는 않지만, 누구와 얘기하느냐에 따라 목소리가 달라지기도 하고 버릇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로라 런던 : 그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인가요? 우리가 그런 식으로 세상에서 기능한다는 말씀인가요? 잘못된 것 아닌가요?
스타인 박사 : 그럼요, 지극히 자연스럽죠.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익힌다는 의미에서 자연스럽습니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거죠. 자동적으로 그렇게 합니다. 아이들처럼 그렇게 합니다.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면, 아이도 따라서 우리에게 미소를 짓습니다. 아이는 아빠 혹은 엄마 역할을 하기 시작하고, 혹은 누군가와 의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라면서 이런 역할들을 배웁니다. 그건 자동적인 겁니다. 완전히 자연스럽죠.
로라 런던 : 그렇다면 말이죠, 우리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면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스타인 박사 :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입니다. 융을 비롯한 초기 정신 분석가들이 위대한 발견 혹은 통찰로 알아낸 사실이 바로 그거죠.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존재만이 아니며, 우리가 알고 있는 존재만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무엇입니다. 우리에게는 의식적인 부분과 무의식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일들을 일부는 의식적으로 일부는 무의식적으로 하며, 어떤 역할들을 일부는 의식적으로 또 일부는 무의식적으로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일까요?
이건 아주 복잡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융이 가령 자기(self)에 대해 말했을 때, 이 자기는 복합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다른 특징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모든 걸 합할 때 비로소 당신은 누구인가(who you are), 당신은 무엇인가(what you are)를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인가보다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라는 질문은 한 사람의 핵심(core)과 관련됩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보면서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불교에서 “너의 이름이 있기 전에 너의 이름은 무엇이었는가?” 혹은 “네가 태어나기 전 너는 누구였는가?”라고 물을 때, 이는 한 개인의 핵심에 있는 정체성에 관한 수수께끼에 답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아주 많은 역할을 하므로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일 때, 청소년일 때, 중년일 때, 노인일 때, 아--노인이면서 지혜로운 사람일 때 우리는 각기 다른 사람들입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누구’는 아주 불가사이하며 답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이름일까요? 누군가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이 바로 여러분일까요? 여러분은 그것이 자신인양, 그 부름에 응답합니다. 하지만 그 이름 역시 여러분에게 주어진 것이며, 이름은 바뀝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이름을 바꾸잖아요. 그러니까, 여성들은 성을 바꿨죠. 어떤 때는 연기나 출판을 위해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름에는 불안정한 면이 있는데도,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의 이름을 부를 때, 여러분은 자신이 불린다고 느낍니다. 불리는 게 여러분의 존재인 것이죠. 그리고 그 이름이 자신의 존재인 듯 부름에 응답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존재를 부른 겁니다. 그러므로 어떤 목소리가 여러분을 부른다는 것은, 그 목소리가 여러분의 이름을 말한다는 것은 인간 경험과 정체성의 아주 깊숙한 부분에 이르는 일입니다.
로라 런던 : 책(영문판) 109페이지를 보면, ‘심리학적으로 볼 때, 페르소나는 개인의 의식적인 생각과 느낌을 타자에게 감추거나 드러내는 일을 하는 기능 콤플렉스다. 콤플렉스의 한 형태로서 페르소나는 높은 자율성을 지니며, 자아의 완전한 통제 아래 있지는 않다.’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우리가 이것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요?
스타인 박사 : 그러니까, 그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로라 런던 : 실제로 여러 가면을 쓰면서 “그래, 지금은 이 가면을 쓸 거야”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스타인 박사 : 그렇죠. 언젠가 비디오로 내 모습을 보면서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 그 사람은 내가 비디오에서 보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어떻게 보여 지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보이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고 묘사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내 모습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에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러니 대개의 경우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보여 지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합니다.
로라 런던 : 그러면 다시 묻겠는데, 그것이 정말 자연스러운 건가요?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기능하는 정상적인 방식인가요?
스타인 박사 : 우리가 자동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의미에서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자, 만일 여러분이 직업 배우라고 하면 얘기가 다릅니다. 무대에서 페르소나를 연기하는 것이니까요. 자신이 그렇게 한다는 걸 알고 있는 거죠. 그 역할을 시작하고, 그 역할을 배웁니다. 좋은 배우는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정도까지 그 역할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이아고가 되거나 줄리어스 시저가 되거나 클레오파트라가 됩니다. 그 순간 무대에서 그 역할이 되는 겁니다. 피터 셀러스는 말년에 이르러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지 모른다고 말했죠. 아주 많은 역할을 했거든요. 그리고 그런 역할들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 거죠. 우리는 자신이 하는 역할과 스스로를 동일시할 수 있는데, 나는 그것을 ‘페르소나 덫(trap)’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일련의 행동과 태도, 지위, 사회적 정체성에 몰입되어 더는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면 또 다른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것이 심각해지면 정신치료에서 우리가 다루는 문제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로라 런던 : 그러니까, 우리가 “당신은 정말로 누구입니까? 당신은 진정 누구입니까?”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한 가지가 아니군요. 많은 걸 의미하는 거예요. 우리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박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이런 의미인가요?
스타인 박사 : 우리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중심(center), 즉 핵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융이 자기에 대해 말한 걸 보면, 중심과 주변(circumference)이 있어요. 주변은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모든 부분을 포함하죠. 그렇다면 중심에 있는 것은 뭘까요? 융은 여러 차례 빈두 포인트(bindu point)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시작되었죠. 빈두 포인트는 만다라의 중심이며 창의성의 중심이고 에너지의 중심입니다. 그리고 이름이 없습니다. 만다라를 그릴 때 사람들은 거기에 뭔가를 그려 넣습니다. 융은 만다라 한가운데에 별을 그렸어요. 그것은 모든 걸 초월한 무엇,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무엇, 신의 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이 생각하는 신의 형상입니다. 내면에 있는 신이죠. 내면에 있는 부처입니다.
로라 런던 : 만일 우리가 여러 개의 가면 중 하나와 스스로를 동일시한다면, 그렇다면 자기와 분리되는 건가요? 말하자면 자기를 버렸다고 해야 하는 건가요?
스타인 박사 : 그럴 수도 있죠. 네, 그럴 수 있어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어떤 역할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잃지 않고,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나는 김남준, RM이라고 하더군요, 그 청년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같았어요. UN의 제너레이션 언리미티드 행사에서 연설했죠. 그 연설을 유튜브에서 여러 번 봤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감명을 받은 부분은, 그가 서울 외곽의 작은 도시에서 성장한 소년이라는 자신의 모습과 지금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유명해진, 그러니까 연예계에서 스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신중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그가 자신을 지금의 역할과 완전하게 동일시하려 한다면, 아마도 자기 자신, 소년이었던 자신, 한 인간으로서 지금 모습과 연결되지 못할 것이며 자신을 지탱하는 기반을 잃고 말겠죠. 그러면 자신과 분리되고 맙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 지에 심하게 휘둘리는데, 일단 공인이라는 자리에 들어서면 나를 떠받들어주는 대중의 칭송과 인정에 모든 게 좌우되거든요. 그러다 대중이 그 모든 걸 중단하는 순간, 내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죠. 텅 비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다시 자신을 탐구해야 하며, 자기의 핵심과 다시 연결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 핵심은 대개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볼 때, 어린 시절과 근원과 가족, 그리고 그걸 너머 모든 것의 기저를 이루는 어떤 원형적이고 초월적인 자기 감각을 들여다볼 때 가장 잘 찾을 수 있습니다.
로라 런던 : 방탄소년단을 간단히 소개하면, 멤버는 모두 일곱 명입니다. 모두 남성이죠. 나는 그들을 소년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은데, 나이대가 스물한 살에서 스물여섯 살이거든요. 박사님이 방금 언급하신 RM은 그룹의 통역을 맡고 있습니다. RM이 그 그룹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것 같더군요. 스물 네 살이고, 굉장히 논리적입니다. UN에서 아주 유창하게 연설했죠.
스타인 박사 : 가슴을 울리는 연설이었어요. 아주, 아주 감동적이었죠.
로라 런던 : 네, 맞습니다. 작년 9월에 한 연설이었어요. 에피소드 페이지에 링크를 걸어두겠습니다. 몇 가지 더 말하면, 방탄소년단은 2017년과 2018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리트윗된 유명인입니다. 10월에는 차세대 리더로 《타임》지 인터내셔널판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고요. 방탄소년단의 팬클럽인 아미가 박사님과 제 트윗에 보여준 엄청난 관심 덕에 지난 한 주 동안 우리 두 사람의 트위터에 한바탕 폭풍우가 몰아치기도 했습니다.
스타인 박사 : 팬들이 보내준 질문들 중 내가 답을 하고 싶은 질문이 몇 가지 있는데요. 로라, 그 질문들을 내게 읽어주고 내가 답하는 식으로 얘기를 이어갈까요?
로라 런던 : 네, 첫 번째 질문은 쿠키 크럼블이라는 분이 보내주신 건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스타인 박사님과 융의 작품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융과 페르소나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가장 해주시고 싶은지 묻고 싶습니다.”
스타인 박사 : 우선 내가 방탄소년단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부터 얘기해야겠군요. 이 나이가 되다 보니 포스트 밀레니얼 세대나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알 기회가 없어요. 그 나이 또래 손자가 있긴 하지만요. 그러니 방탄소년단에 대해서도 전혀 들은 바가 없었죠. 나는 스위스에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 대중문화를 그러니까, 거의 접할 일이 없이 살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그저 융이라는 세계에 온통 몰두해 있죠. 전 세계 융 분석학자들 중 방탄소년단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어요.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그중 몇 명이 자기 환자들 중 방탄소년단 팬들이 있다고 말하긴 하더군요.
그런데 취리히 대학에 다니는 일본 학생 하나가 어느 날 내게 “방탄소년단 웹사이트에 박사님 책이 추천 도서로 올라 있는 걸 아시나요?”라고 물었고 그때서야 궁금증이 생겼죠. 그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일본에서 아주 유명하며 엄청나게 많은 팬이 있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구글 검색을 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내 책 《융의 영혼의 지도》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함께 추천 도서 목록에 있는 겁니다. 그렇게 유명한 작가들과 나란히 내 이름이 있다니, 기분이 좋았죠. 세상에,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그러고 나서 방탄소년단이 융에게 관심이 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그들 노래 몇 곡에서 융의 이름이 나오기도 하더군요. 그러다 갑자기, 일주일 전쯤인가, 그들의 새 앨범 제목이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당연히 얼떨떨했죠. 그러더니 그들 팬클럽인 아미가 내게 연락도 해오고 노래 가사의 의미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뭐 그런 식이었어요. 그러면서 방탄소년단에 대해 좀 더 알게 된 겁니다.
그들이 융과 내 책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정말 기뻤는데, 그 덕에 그렇지 않았다면 융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거나 융이 전달하려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을 사람들에게 융의 메시지와 비전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내 생각에 융이 이 세대에 전하려는 것은 완전함(wholeness)이라는 비전, 온전함(integrity)이라는 비전, 그리고 인간의 권리이며, 이 모두가 전 세계 사람들이 접하고 탐구하고 매일의 삶에 적용해야 할 너무도 소중한 가치입니다. 융의 메시지는 희망으로 가득한데, 우리의 무의식이 빛으로 반짝이고 창의적이며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게 많다고 해요. 우리가 그 무의식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것은 내면의 안내자가 되어줍니다. 융이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한 개인의 ‘신성함’, 각 개인이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진다는 것의 중요성, 이 세상과 지구에 책임감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인데, 나는 이런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메시지라 생각하며 바로 이런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겁니다. 우리 각자는 강인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책임질 줄 알아야 합니다.
로라 런던 : 잘 들었습니다. 다음 질문은 고스트로어라는 분이 해주셨는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 지식을 얻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지식을 얻는 것으로 끝인가요? 아니면 그 너머를 보고 자신의 그림자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아직 그림자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는데요.
스타인 박사 :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자주 답을 했던 질문이기도 하고요. 그림자를 발견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죠. 첫째, 우리는 절대 그림자를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러니 끝이라는 건 없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어떤 자리에 있든, 나이가 몇이든 그림자는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따라다니죠. 그림자는 무의식적인 나르시시즘, 자기중심주의, 이기심이며…… 시기심, 전통적으로 일곱 가지 대죄라고 명명되고 생각되었던 것들, 뭐 그런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어요. 늘 가지고 있죠. 그리고 없앨 수도 없습니다. 자신과 그것들을 동일시하려 해서는 안 되지만 인식은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이 곧 변화의 과정으로 가는 시작입니다. 이 과정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까요? 그것이 질문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알아보고, 그것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것이 우리의 일부이므로 행동에 책임을 진다면, 우리는 어떤 단계에 이르는 걸까요?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말이죠, 대개의 경우, 뭔가를 제대로 하기에 이미 늦어버린 다음에야 그림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실수를 하고 난 다음에서야 되돌아보며 생각하죠. ‘아, 이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도 하고 있었어.’ ‘내가 사람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보다 내게 더 도움이 되었구나.’ ‘그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해서 비난하지만 사실은 시기하고 있었던 거야.’ 뭐 이런 식이죠.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그 사람에게 가서 사과하고, 모든 걸 실토하고, 여러분이 행동하고 말한 것이 전부는 아니며 다른 면도 있다고 인정할 수 있겠죠.
말하자면, 여러분이 피해를 주거나 혹은 그림자 행동과 태도로 상처를 입힌 사람들에게 보상을 하는 겁니다. 보상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배상(Reparations)이라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노예의 후손들에게 상업적 이익 등의 명목으로 자행된 행동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 유대교 용어로 티쿤 올람(Tikkun olam)이라고 하며, ‘세상을 개선하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이 나와 내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내가 능력이 닿는 한 세상과 세상의 이익에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늘 실수를 할 것이고 언제까지나 그림자를 지니고 살겠지만, 그럼에도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에서 스스로에게 책임지는 것으로 태도를 바꾸는 겁니다. 자신을 보살피고, 자신의 건강을 살피며, 영성과 몸, 온전한 자기를 보살피는 일도 아주 중요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 세상을 생태학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그림자를 인식하는 것은 이런 변화의 시작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겁니다.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분명 여러분은 다른 인생의 길에 있게 될 겁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리고 의식적으로 다른 길에 있을 겁니다. 그런 이유로 그림자를 탐험하고 의식하는 과정은 심리 발달에 아주 중요합니다.
로라 런던 : 박사님 책(영문판) 110페이지를 소개하고 싶은데요, 여길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보완적 기능 콤플렉스인 그림자는 페르소나와 반대되는 역할을 한다. 그림자는 페르소나가 허용하지 않는 것을 하길 원하는 잠재 인격으로 간주된다.” 저는 이 부분이 그림자에 대한 아주 훌륭한 정의이며 적절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인 박사 : 페르소나와 그림자 간의 충돌인 거죠. 페르소나는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보기를 바라는 자신의 모습’인데, 우리들 대부분은 고귀하고 선하고 용감한 모습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모습들은 그림자 속에 둡니다. 부정하고 억누르고 거부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림자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그곳에 존재하면서 활동합니다. 따라서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에 충돌이 생기죠. 페르소나는 여러분이 옷을 입는 방식, 걸치는 장신구, 입는 옷, 머리 색깔, 헤어스타일, 이 모든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만일 그림자의 가면을 만든다면, 그건 어떤 모습일까요? 아마도 우리가 평소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갈 때의 차림새나 모습과는 아주 많이 다를 겁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만일 여러분이 그림자를 인식하고, 그걸 가면으로 만들거나 그려본다면 말입니다. 실제로 워크숍에서 이 가면 만드는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찾아 가면으로 만들고 일정 시간 그 역할을 해보는 거죠. 그렇게 하면 그림자를 의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융은 《레드북》에서 자신의 그림자를 그렸는데요, 도둑처럼 교활하며 썩 멋지지는 않은 모습이었어요. 실제로 융은 아주 점잖은 신사였어요. 영국 스타일로 옷을 꽤 잘 입었으며 과학자이자 의사, 훌륭한 사람의 모습이었죠. 그런데 그림자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레드북》에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림자와 접촉하고 그것을 늘 생각할 수 있었어요.
또 반문화(counter-culture)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문화에 맞게 옷을 입지만, 어떤 사람들은 페르소나를 다른 식으로 표현하며 그렇게 해서 반문화적이 됩니다. 그래서 몸에 눈에 띄는 문신이나 피어싱을 하거나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들이 주류 문화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대번에 알아봅니다. 그들은 우리가 반문화라고 부르는 또 다른 문화와 스스로를 동일시합니다. 시위 집단, 저항 운동, 뭐 그런 거 말입니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페르소나지만, 어쨌든 페르소나예요.
이 페르소나는 어떤 그림자를 숨기고 있을까요? 모든 페르소나에는 배제된 뭔가가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착한 아이가 그 그림자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착한 아이는 그들이 절대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인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억누르려 하는 것이죠. 하지만 꿈이나 공상 속에서 때때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다른 이에게 투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림자로 그러는 것처럼요. 그리고 공격합니다. 그 모든 모범생, 고상한 사람들을…… 봐줄 수가 없고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반문화의 그림자인 겁니다.
로라 런던 :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겁니까?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되는 거죠?
스타인 박사 : 반문화 속에 들어가는 것 말인가요? 글쎄요, 친구들이 그쪽으로 가기 때문일 수도 있죠, 그러면 그 친구들을 따라하고 싶어지고요. 대개는 흉내 내는 거죠. 멋져 보이니까요. 나도 그 멋진 집단에 들어가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문신을 하고, 그러다보면 그 멋진 집단은 어느새 반문화적이 됩니다. 학교의 반항아 집단이 그런 거죠. 그들은 모범생이 아니에요. 방과 후에 몰려다니고 운동장에 모여 담배를 피우고, 그런 식입니다. 어떤 집단이나 무리의 일원이 되는 것이 반문화 속에 들어가는 한 가지 형태가 됩니다. 친구들이 그 집단의 일원이기 때문에 나 또한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거죠. 또 다른 형태는, 어떤 집단이나 주류 문화를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기분 나쁜 경험을 하고 나서 그들에게 저항하기로 하는 겁니다. 그들 앞에서 거칠게 행동하고, 욕설을 하며, 머리를 오렌지색으로 물들이고 피어싱을 하고 취리히의 반호프 거리를 걷는 식이죠. 은행원이나 귀금속 가게 주인을 조롱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집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문신 시술소가 굉장히 대중화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사실상 주류문화가 되다시피 했더군요. 그런데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서는 문신이 보이지 않네요. 그들이 문신을 감추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한국에서 는 아직 문신이 유행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로라 런던 : 저도 잘 모르겠네요. 자, 다음 질문입니다. “융 심리학에서는 꿈이 굉장히 중요한 특징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꿈과 페르소나의 관계를 짧고 간단하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스타인 박사 : 짧고 간단하게요. 옷이죠! 우리가 꿈에서 입고 있는 옷이며, 어떤 꿈에서는 이 옷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나 역시 꿈을 많이 다룹니다. 나는 융 분석가이며 일주일 내내 꾸준히, 그러니까 거의 매일 내담자들을 만나는데, 그들에게서 꿈 얘기를 듣습니다. 그 꿈들 중 꽤 높은 비율에서 옷이 특징으로 나타나거나 옷의 이미지가 있어요. 꿈에서 옷을 전혀 안 입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옷을 안 입고 있다는 것은 페르소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때 우리는 완전히 노출되었다고 느끼고, 벌거벗고 있다고 느끼며, 취약하다고 느끼고, 당황합니다. 그런데 이런 꿈을 꿀 때라도 그 느낌은 조금씩 달라져요. 이런 꿈을 계속 꾸는 내담자가 있었는데, 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에 점점 편안해지는 걸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개별화(individuation)라는 상태로 가는 단계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수용(self-acceptance)이죠. 옷을 전혀 입지 않은 자신, 어떤 겉치레도 없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겁니다. 이것은 방탄소년단의 레퍼토리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주제입니다. 그들의 음악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무척이나 강조합니다. 그들이 한 연설도 자기애(self-love)와 자기수용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수치심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젊은이가 자신이 별 볼일 없고 별로 멋지지 않으며 형편없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자살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이 때문에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 같은 것이 유행병처럼 번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페르소나 없이 혹은 사회적 지위나 피부색 등에 관계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은 한 사람의 정신 건강과 안녕에 아주 중요합니다.
로라 런던 : 그렇다면 바로 지금 그 사람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박사님은 그들에게 큰 영향력을 갖고 계시잖아요. 어떤 말로 용기를 주고 싶으신가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인 박사 : 그래요, 그렇고말고요. 친구나 파트너, 부모, 아이, 개, 반려동물이 있어서 그들이 여러분에게 받은 사랑을 그대로 다시 보여준다면, 자신을 사랑하기가 훨씬 수월해질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에게 애정과 수용을 보여주는 어떤 존재가 있다면, 자신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워지죠. 이것이 첫 단계입니다.
몇 년 전 한 여성이 해준 얘기를 듣고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나이가 40대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신의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는 얘기를 했죠. 젊은 시절에는 자기 몸이 너무 마르고 빈약하며 자신감이 없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어느 날 욕실에서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본 겁니다. 막 목욕을 마치고 옷을 입지 않은 상태로 거울을 보았는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애정을 느꼈다는군요. 그 모습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고요. 나는 그것이 셀프 미러링(self-mirroring)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에게 애정을 느끼는 거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해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겁니다. 이것은 아주 높은 수준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아주 높은 수준의 자기수용에 이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그 시작이 될 수도 있어요.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는 것처럼 말이죠. 엄마가 아기를 사랑할 때 둘 사이에는 유대감이 생기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매우 안타깝게도 아이는 다른 곳에서 그 유대감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아이들 중 일부가 폭력 집단에 들어가기도 하는데, 바로 그곳에서 사랑과 수용을 발견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능력,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할 겁니다.
RM도 연설에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은 이미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 점이 나는 마음에 듭니다. 이제 스물 네 살이잖아요. 그 단계에 이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며, 이는 평생에 걸쳐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노력의 하나로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들을 해도 좋고요. 물론 그렇게 해서 대번에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그림자와 실패와 결점, 어두운 면, 이 모든 것을 하나씩 하나씩 받아들이는 게 필요합니다.
받아들인다는 건 허용한다는 것과 다릅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을 고찰하고 책임지며 내 삶과 역사의 일부로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결점을 비롯한 모든 것을요. 자기수용은 페르소나를 넘어섭니다. 꿈에서 페르소나는 옷을 입는 겁니다. 옷을 갈아입는다는 건, 그러니까 파란색 드레스에서 빨간색 드레스로 갈아입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페르소나를 생각하는 것에서 느끼는 것으로 변하는 걸 수도 있고, 자기표현을 바꾸는 걸 수도 있겠죠. 꿈에서 특별한 뭔가를 의미하는 장신구를 걸치기도 합니다. 다이아몬드 반지는 뭔가를 나타내겠죠. 꿈에서 입는 옷은 페르소나를 드러냅니다.
로라 런던 : 아까 제가 했던 얘기를 다시 해보면, 자신과 주위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라고 했습니다. 저도 그러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데, 그러니까 사람은 다 다르고, 외양이 다 다르고, 다 다른 존재인데, 그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 꼭 좋아하거나 그들처럼 될 필요는 없지만 사람들의 서로 다른 면과 독특한 모습 그 자체는 사랑하고 존중해야겠죠.
스타인 박사 : 그렇죠. 사람들이, 특히 누군가를 처음 볼 때, 그러니까 그들을 거리에서 볼 때 아주 흔히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분류하는 거죠. 그들을 어떤 집단에 넣습니다. 아, 아프리카 사람이군, 아시아 사람이야, 중국 사람이네, 남자야, 여자군. 어린아이야, 이런 식으로 그들을 집단으로 나눕니다. 그런 다음 각 집단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느낌에 따라 그들을 조금씩 다르게 평가하죠. 여기에서 인종차별이 나타납니다. 그 집단을 좋아하지 않으니 집단에 속한 개인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즉각 반응합니다.
사람들이 차이에 보이는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에 대한 연구도 있습니다. 나중에 의식하긴 하지만 반응은 즉각적이죠. 반응하고 나서 의식하는 겁니다. 반응할 때는 어떤 말을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의식하게 되면, 어떤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티쿤 올람이죠. 즉 세상을 개선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집단 너머 개인을 본다면, 그 사람과 해변에 앉아서 이야기를 해보면,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그들이 느끼는 갈등을 듣고 그들의 삶을 듣고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는 전혀 다른 인상을 받게 될 겁니다. 그러고 나면 그들을 하나의 개인으로 보게 되고, 그들의 영혼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그들의 외양만을 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가령 치료사들은 감옥에 가서 상습범이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는 그들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다 그들 내면의 부드럽고 연약한 면을 발견하고, 그들에게도 각자의 인생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어떤 이유, 말하자면 심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그들이 누군가를 살해하거나 이런저런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어떤 친밀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들을 더는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영혼과 내면을 들여다보고 참모습을 알게 되었으므로 그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런 수준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파티나 모임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그저 몇 마디 나누는 게 전부일 뿐더러, 설령 가족이라 해도 대개는 서로에게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으니까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상대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엄청나게 커집니다. 일단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자신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변화에 스스로도 놀랄 겁니다.
로라 런던 : 우리가 ‘영혼’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정의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히바라는 분이 하신 질문입니다. 히바와 트위터에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우리 모두가 여러 면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히바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르겠어서 미안한데, 아무튼 이 분의 질문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면이 다 진짜라는 건가요? 모든 얼굴이 다 우리 자신이며 하나의 진정한 개인성(personality)이란 없다는 뜻인가요?” 우리가 처음에 얼마간 얘기했다고 생각하는데, 영혼이란 뭔가요?
스타인 박사 : 내가 책 제목에 ‘영혼’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를 얘기해야겠군요. 사실 ‘정신’이라는 용어를 쓸 수도 있었어요. ‘융의 정신의 지도’, 이렇게 말이죠. 융은 심리학자고, 정신이라는 내면세계를 이야기하니까요. 또 나는 개인성에 관한 모든 부분을 포괄하는 용어인 ‘자기’를 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영혼’을 선택했어요. 이 단어에는 감정의 울림이 있기 때문이죠. 어쨌거나 영어에서 ‘영혼’이라는 단어는 인간 내면에 있는 신성한 뭔가를 뜻합니다. 불멸의 영혼이죠. 예로부터 영혼은 우리 인간의 일부, 절대 꺼지지 않는 불꽃, 육신이 죽으면 또 다른 세상으로 가는 영원불멸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용한 ‘영혼’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신’에 대해 얘기할 때, 그리고 친밀한 상황에서나 대화에서 다른 사람들의 정신과 소통할 때, 뭔가 성스러운 것, 뭔가 가치 있는 것, 특별한 어떤 것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바로 그것이 내가 ‘영혼’이라는 단어로 전달하고 싶은 의미입니다. ‘정신’과 ‘자기’는 소중한 가치,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이며, 함부로 손댈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누군가의 영혼을 아무렇게나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학대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심리치료사들은 타인의 삶과 인생 과정, 이야기, 내면의 세계를 다룰 때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합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영혼’이라는 단어로 전달하고자 했던 의미입니다.
이제 또 다른 질문, ‘이 모든 면이 다 우리의 일부인가?’에 답하면, 네, 그렇습니다. 그것들 모두 우리의 일부이며, 모두 우리에게 속해 있습니다. 융은 《레드북》을 집필하는 동안 자신의 내면을 연구하면서 이런 결론에 이르렀는데, 그 책에서 모든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융은 ‘만다라’라는 그림을 그렸는데요, 안에 서로 다른 여러 개의 도형이 있는 원들을 그린 다음 원의 중심에서 둘레를 향해 네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힌두교와 불교에서 이 원을 ‘만다라’라고 하며 완전함의 원’을 의미합니다. 개인성, 정신, 영혼의 모든 부분이 만다라의 사분원들에 들어맞습니다. 위쪽 사분원들에는 영적인 면이 있으며 아래쪽 사분원들에는 육체적, 물질적, 본능적 면이 있습니다. 또 여성의 면이 있고, 남성의 면도 있습니다. 내가 책에서 말한 정신의 모든 면, 모든 특징이 만다라에 들어 있습니다. 만다라는 우리의 완전함을 나타냅니다. 모든 걸 포함하는 우리의 존재입니다. 모든 부분이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어떤 조각들을 배제한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저 무의식으로 들어갈 뿐이죠. 그러고 나면 우리는 그 부분을 투사하거나 잃어버립니다. 스스로에게서 완전함, 풍성함의 일부를 떼어내 버리는 겁니다.
로라 런던 : 방금 ‘투사’라는 단어를 쓰셨는데요, 융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또 하나의 용어죠. 우리가 뭔가를 타인에게 투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스타인 박사 : 투사라는 개념은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부분을 타인에게 부여하고 그 모습이 그 의 실체인양 느끼는 겁니다. 이에 관한 예는 많이 있지만, 우리 머릿속 뒷부분에 영사기가 있다고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그 영사기가 그림자를 타인에게 비추는 거죠. 그러면서 그 타인을 악하다고 여기고 그 모습이 그 사람 자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투사가 일부 정확할 수도 있지만, 그러니까, 상대의 모습, 상대의 페르소나와 같을 수도 있지만, 분명 그들의 전부는 아닙니다. 투사의 대부분은 우리가 상대에 대해 지니는 느낌, 평가, 판단이며, 이것은 우리 자신의 내면세계, 무의식적인 정신에서 비롯되고, 거기에서 나와 바깥세상으로 갑니다.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하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느 정도의 통찰력을 갖추고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상대의 모습과 그를 더 잘 알고 난 뒤의 모습 사이의 차이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이런 일은 여러 관계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이 완벽해보이죠. 그에게는 조금의 결점도 없습니다. 그저 신과 같은 존재인 거죠. 하지만 6개월쯤 지나 그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서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닫기도 하죠. 내가 봤던 모습은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닌 겁니다! 아, 그의 일부일 뿐일 때가 있죠! 그 일부는 마음에 들지만 다른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투사는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세상, 환상을 주위에 만들지만, 좀 더 캐보면 그 모든 건 우리가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때가 흔히 있어요. 우리가 만든 거죠. 정말로 그곳에 있는 게 아니라요. 그저 실제라고 믿었던 존재의 일부일 뿐이에요. 다시 말해 투사는 아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심리 기능입니다. 투사된 모습이 자신 혹은 내면세계의 일부라는 걸 깨닫는 것은 높은 수준의 개별화나 의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적극적 상상(active imagination)이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여러 면을 탐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보통 외부로 투사되는 이미지를 취해 내면의 이미지로 생각하면서 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탐구한 뒤 자신의 존재 혹은 완전함에 대한 감각에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로라 런던 : 다음은 ‘디어 문’이라는 분이 주신 질문입니다. “융이 《레드북》에 그린 그림들에 대해, 그 그림들이 융의 이론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방탄소년단의 앨범이나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그림과 상징이 참 매혹적이었는데, 제가 볼 때 그 그림들 역시 흥미로웠습니다. 언제나 모든 게 이어지더군요.” 이 이야기를 이미 하셨던가요? 뭔가 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스타인 박사 : 흠, 간단히 말하면, 융이 《레드북》에 실었던 그림들은 책 내용을 설명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그림 그 자체로 뭔가를 나타내는 거죠. 그림들은 글보다 훨씬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책 원고는 1916년에서 1918년 즈음에 완성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림은 1920년대까지 계속되었거든요. 그러니까 융은 원고를 쓰면서 책에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요, 어떤 때는 원고 내용을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고 어떤 때는 원고 내용과 상관없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들은 한결같이 융의 적극적 상상이나 내면세계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합니다. 융은 기억을 떠올리는 원천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가 기억을 떠올리고 서술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책에 그림을 싣고 있습니다. 또한 그림들은 융이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종이에 옮겨내 작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게 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그림들은 융이 체험한 자신의 내면세계를 설명하거나 묘사합니다.
로라 런던 : 그 그림이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와 무대공연에서 사용되는 시각 자료나 상징과 비슷한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스타인 박사 : 그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언제가 한 번 보고 싶군요. 지금까지는 그렇게 할 시간이 없었는데, 방탄소년단이 부르는 노래 가사가 투사되는 상징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주 흥미로울 것 같은데요…… 아마 누군가가 언젠가는 그 주제로 논문을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흥미로운 연구 주제니까요.
로라 런던 : 그리고 음반, CD, 뭐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하던 대로 앨범이라고 부르겠습니다. 4월 12일에 앨범이 나오면 뮤직 비디오도 나올 거고 그러면 번역된 가사도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가서 가사 내용을 논의해보고 박사님을 위해 분석해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미스 싱귤러리티’라는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이번 앨범에서 현세대에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융의 개념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지, 여기에 대해 박사님은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박사님도 이런 식으로 융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스타인 박사 : 흠,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방탄소년단이 어떻게 융을 알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이 그룹이 융을 알게 되었을까요? 멤버 중 누군가가 융을 읽어보았을까요? 제가 알기로 한국에도 융 분석가들이 있습니다. 그중 몇 분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이부영 교수라는 유명한 분이 있는데, 서울에 위치한 융 연구소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내가 편지로 방탄소년단에 대해 아는지 물었더니 안다고 하더군요. 환자 몇 명이 팬이라는 거예요. 이부영 교수는 융의 작품 다수를 독일어 원전에서 한국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는 원전 번역을 아주 강하게 고집합니다. 서울대학교 정신과 교수를 지냈고 지금은 퇴임한 걸로 압니다.
방탄소년단이 융의 사상을 접한 것, 페르소나를 선택한 것은 RM이 유엔에서 한 연설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젊은 세대에게 페르소나는 굉장히 큰 문제거든요. 그것은 정체성, 사회적 정체성과 관련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자살이나 낙담, 절망, 약물 중독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집단 괴롭힘, 그러니까 부족해 보여서, 날씬하지 않아서, 괜찮은 옷을 입지 않아서, 멋지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젊은이들을 절망하게 하고 때로는 자살까지 하게 만드는 끔찍한 집단 괴롭힘에 맞서는 자기수용과 자기애로 그의 연설 내용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주위 사람들의 페르소나 기대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말라는 것이 그들이 팬들에게 전하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내 생각에 이런 이유로 방탄소년단이 그 주제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페르소나 문제를 다루고 더 나아가 자기수용과 의식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요. 페르소나는 우리의 일부일 뿐이며, 그것이 우리를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페르소나는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세상과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라는 거죠. 그것을 전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과 동일시하지도 마세요.
로라 런던 : 아까 얘기했던 투사로 돌아가서, 만일 어떤 사람이 우리를 비난하고 판단하고 괴롭힌다면, 그건 그렇게 하는 사람이 문제인 것이지 우리가 문제인 것은 아니라고 말해도 될까요? 사실 우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요. 모든 문제는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있는 거라고요.
스타인 박사 : 바로 그렇습니다. 그들이 문제인 거예요. 그런 행동은 대개 그들의 그림자, 시기에서 비롯됩니다. 시기는 그림자의 아주 나쁜 부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부정하고 억누르며 그런 게 있다는 걸 아예 알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 게 있다는 걸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나쁜데, 그러다보면 타인을 향한 공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상대에게 내가 시기할 만한 뭔가가 있고 나는 그걸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들을 파괴하고 싶어지는 거죠. 투사를 받아들이면 자신이 가치 없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보내는 투사를 받아들이고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로라 런던 : 더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나요?
스타인 박사 : 페르소나를 주제로 한 새 앨범이 나오면 방탄소년단이 어떻게 할지 기대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가사를 구하게 되면 로라 당신과 또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미리 가사를 볼 수 있는지 아미에게 물어봤는데 안 된다고 하더군요. 앨범이 발표되기 전에는 가사를 구할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그 얘기를 할 순 없겠지만, 가사에 어떤 게 담겨 있을지, 그들이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정말 궁금해요. 그리고 그들을 칭찬하고 싶어요. UN 연설 때문만은 아니고, 또 그들이 인기 그룹이어서만도 아닙니다.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사명을 띠고 있으며,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침반이나 지도를 갖지 못했을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이죠. 방탄소녀단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그들의 고귀한 대의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로라 런던 : 동의합니다. 말씀 정말 잘 들었습니다. 이제 곧 방탄소년단이 여기 미국에서 스타디움 투어를 시작하는데, 제가 사는 시카고의 솔저필드에서도 5월 11일에 공연을 합니다. 그때 전 다른 아미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저도 아미 멤버니까요. 그리고 박사님이 팬들 모두와 무대 위의 방탄소년단을 볼 수 있도록 스타디움에서 영상통화를 하겠습니다.
스타인 박사 : 멋지군요.
로라 런던 : 새 음반이 나오면 그 음반과 방탄소년단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보면서 다시 박사님과 얘기 나눌 수 있길 기대합니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타인 박사 : 감사합니다.
로라 런던 : 청취자들을 대신해, 오늘 시간을 내주신 스타인 박사님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나눈 얘기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웹사이트 SpeakingofJung.com을 방문해주세요. 이 사이트에서 이번 팟캐스트 이전의 에피소드들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이 에피소들은 무료로 청취,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이 팟캐스트는 아이튠즈, 스티쳐, 구글 플레이, 튠인, 스포티파이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인터시티 북스의 리즈 제퍼슨, 방탄소년단 아미 헬프 센터의 칼라, 방탄소년단 아미 모두에게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저는 로라 런던이며, 지금까지 ‘융을 말하다’였습니다.
Korean translation by Moonye Publishing, Seoul, Republic of Korea
Jung’s Map of the Soul: An Introduction by Murray Stein, Ph.D. (Korean edition)
Listen to the full audio of Ep. 42 with Murray Stein, Ph.D.